4921
무력감을 느끼다 感到无力
경각심을 되새기다 重温警觉心
계기가 되다 成为契机
임시 동사무소 临时洞事务所
줄이 길다 队伍长
[太阳][太阳][太阳]
공과금을 내다 交水电费
생계비 지원을 받다 得到生活费补贴
한시름 놓다 松了一口气
뺀질이 滑头
성질이 더럽다 脾气坏
4922
문제를 일으키다 引发问题
백신이 나오다 疫苗问世
껌딱지를 떼다 除掉口香糖
걸레 물이 튀다 抹布水溅起来
옷에 튀다 溅到衣服上
[月亮][月亮][月亮]
감흥도 없이 感触也没有
일에 적응하다 对工作适应
달을 넘기다 超过一个月
전기가 들어오다 来电
낙인 찍히다 被盖上烙印
무력감을 느끼다 感到无力
경각심을 되새기다 重温警觉心
계기가 되다 成为契机
임시 동사무소 临时洞事务所
줄이 길다 队伍长
[太阳][太阳][太阳]
공과금을 내다 交水电费
생계비 지원을 받다 得到生活费补贴
한시름 놓다 松了一口气
뺀질이 滑头
성질이 더럽다 脾气坏
4922
문제를 일으키다 引发问题
백신이 나오다 疫苗问世
껌딱지를 떼다 除掉口香糖
걸레 물이 튀다 抹布水溅起来
옷에 튀다 溅到衣服上
[月亮][月亮][月亮]
감흥도 없이 感触也没有
일에 적응하다 对工作适应
달을 넘기다 超过一个月
전기가 들어오다 来电
낙인 찍히다 被盖上烙印
인터뷰1
처음에는 예쁜 외모로 주목받았지만, 결국은 실력으로 자신의 경쟁력을 증명했다. 빠른 스피드와 수준급의 기술을 자랑하는 이민아(29)는 외모와 실력을 모두 겸비했다는 주목과 함께 당당히 국가대표 에이스 자리까지 올랐다.
이민아가 여자축구의 불모지에 가까웠던 한국에서 국가대표 에이스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본인의 노력뿐만 아니라 부모님의 아낌없는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지원도 환경도 상대적으로 좋지 않은 여자축구 현실 속에서 학창시절부터 성인이 되기까지 선수 활동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은 것이 사실. 딸을 가진 부모의 입장에서도 쉽지 않은 결정이기도 했다.
좋지 않은 저변 속에서 이민아는 어떻게 한국을 대표하는 축구 선수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이민아의 어머니를 만나 이민아의 어린 시절과 성장, 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심정에 대해 들어봤다.
.
- 깁스 차고 드리블, 부모도 막을 수 없었던 이민아의 축구 열정
이민아가 축구를 시작한 시기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축구에 관심이 많았던 교장선생님이 여자축구팀을 신설해 교사 식단 제공과 청소 제외 등 귀가 솔깃할 만한 혜택들로 학생들을 끌어 모았고, 이민아도 이에 솔깃해 축구부의 문을 두드렸다.
이민아는 축구의 매력에 금방 빠졌다. 집에도 가지 않고 밤늦게까지 운동장만 뛰어다녔다. 왜소한 체구의 딸이 늦은 밤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는데 걱정하지 않을 부모님이 어디 있을까. 당연히 부모님은 딸이 축구를 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러나 이민아의 간곡한 부탁이 이어졌다. 당시 밥 먹기를 그렇게 싫어했던 이민아는 축구부에서 밥도 잘 나온다고, 축구를 계속 시켜준다면 밥도 잘 먹겠다고 약속을 하면서 축구를 계속하길 원했다(물론 이 약속은 성인이 될 때까지 지켜지지 않았다고 한다)고한다.
부모님은 ‘일단 지켜보자’라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6학년 때까지만’이 ‘중학교 때까지만’으로 이어졌다. 중학교 원서를 쓸 때 여자 축구부가 있는 학교를 지원하겠다고 했고, 눈물의 투쟁 끝에 부모님으로부터 상원중학교 진학 허락을 받아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부모님은 중학교를 마칠 때까지 축구를 시킬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자식 이기는 부모가 어디 있으랴. 이민아의 축구를 향한 열정에 부모님도 두 손을 들었다.
아침 내내 구토를 했던 이민아가 그라운드에 나서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펄펄 뛰어다니고, 또 발목이 부러져 깁스 신세를 져야 했을 땐 다리 전체를 감싸 안은 깁스를 차고도 병실에서 쉬지 않고 축구공을 차며 축구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다. 그 와중에도 이민아는 근육이 계속 빠져 다리가 가늘어진다고 “내 근육, 내 근육”하면서 매일 펑펑 울었다고.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얘는 축구를 해야 할 운명이구나’라고 생각한 부모님은 그 후 더 이상의 반대 없이 딸의 축구 인생을 응원했다.
.
- 포항으로 일본으로, 부상당할까 조마조마하며 지켜봤던 딸의 경기
이민아는 중학교 졸업 후 포항여자전자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기 시작했다. 부모님의 원정길도 이때부터 시작됐다. 포항뿐만 아니라 다른 지방까지, 경기가 있는 곳마다 찾아다니며 딸의 경기를 응원했다.
부모님의 원정길은 이민아가 대학을 가서도 또 WK리그를 가서도, 그리고 일본을 가서도 계속됐다. 비록 대구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는 가지 못했지만 경주나 구미, 대구와 비교적 가까운 지역의 주말 경기는 꼭 챙겼다.
경기 때마다 어머니는 관중석에서 잠시도 가만히 앉아있지 못했다. 경기장 끝에서 끝까지 이민아가 뛰어다니는 곳마다 계속 쫓아가 그를 응원했다. 딸의 활약을 더 가까이서 지켜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어디 다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마음도 컸다. 딸의 부상에 조마조마하며 잠시도 가만히 앉아있지 못했다.
그렇기에 이민아가 일본에서 입은 부상은 어머니에겐 안타깝기만 할 따름이었다. 이민아는 재작년 겨울에 입은 햄스트링 부상으로 1년 동안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축구를 그만 둘 생각까지 하게 만든 전치 4~6개월의 심각한 부상이었다. 이제까지 큰 부상 없이 잘 뛰어 온 딸이었기에, 이번에 입은 큰 부상은 더욱 안쓰러울 수밖에 없었다.
#李玟娥[超话]##韩国队[超话]##韩国女足##仁川现代制铁#
처음에는 예쁜 외모로 주목받았지만, 결국은 실력으로 자신의 경쟁력을 증명했다. 빠른 스피드와 수준급의 기술을 자랑하는 이민아(29)는 외모와 실력을 모두 겸비했다는 주목과 함께 당당히 국가대표 에이스 자리까지 올랐다.
이민아가 여자축구의 불모지에 가까웠던 한국에서 국가대표 에이스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본인의 노력뿐만 아니라 부모님의 아낌없는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지원도 환경도 상대적으로 좋지 않은 여자축구 현실 속에서 학창시절부터 성인이 되기까지 선수 활동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은 것이 사실. 딸을 가진 부모의 입장에서도 쉽지 않은 결정이기도 했다.
좋지 않은 저변 속에서 이민아는 어떻게 한국을 대표하는 축구 선수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이민아의 어머니를 만나 이민아의 어린 시절과 성장, 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심정에 대해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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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깁스 차고 드리블, 부모도 막을 수 없었던 이민아의 축구 열정
이민아가 축구를 시작한 시기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축구에 관심이 많았던 교장선생님이 여자축구팀을 신설해 교사 식단 제공과 청소 제외 등 귀가 솔깃할 만한 혜택들로 학생들을 끌어 모았고, 이민아도 이에 솔깃해 축구부의 문을 두드렸다.
이민아는 축구의 매력에 금방 빠졌다. 집에도 가지 않고 밤늦게까지 운동장만 뛰어다녔다. 왜소한 체구의 딸이 늦은 밤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는데 걱정하지 않을 부모님이 어디 있을까. 당연히 부모님은 딸이 축구를 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러나 이민아의 간곡한 부탁이 이어졌다. 당시 밥 먹기를 그렇게 싫어했던 이민아는 축구부에서 밥도 잘 나온다고, 축구를 계속 시켜준다면 밥도 잘 먹겠다고 약속을 하면서 축구를 계속하길 원했다(물론 이 약속은 성인이 될 때까지 지켜지지 않았다고 한다)고한다.
부모님은 ‘일단 지켜보자’라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6학년 때까지만’이 ‘중학교 때까지만’으로 이어졌다. 중학교 원서를 쓸 때 여자 축구부가 있는 학교를 지원하겠다고 했고, 눈물의 투쟁 끝에 부모님으로부터 상원중학교 진학 허락을 받아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부모님은 중학교를 마칠 때까지 축구를 시킬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자식 이기는 부모가 어디 있으랴. 이민아의 축구를 향한 열정에 부모님도 두 손을 들었다.
아침 내내 구토를 했던 이민아가 그라운드에 나서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펄펄 뛰어다니고, 또 발목이 부러져 깁스 신세를 져야 했을 땐 다리 전체를 감싸 안은 깁스를 차고도 병실에서 쉬지 않고 축구공을 차며 축구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다. 그 와중에도 이민아는 근육이 계속 빠져 다리가 가늘어진다고 “내 근육, 내 근육”하면서 매일 펑펑 울었다고.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얘는 축구를 해야 할 운명이구나’라고 생각한 부모님은 그 후 더 이상의 반대 없이 딸의 축구 인생을 응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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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항으로 일본으로, 부상당할까 조마조마하며 지켜봤던 딸의 경기
이민아는 중학교 졸업 후 포항여자전자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기 시작했다. 부모님의 원정길도 이때부터 시작됐다. 포항뿐만 아니라 다른 지방까지, 경기가 있는 곳마다 찾아다니며 딸의 경기를 응원했다.
부모님의 원정길은 이민아가 대학을 가서도 또 WK리그를 가서도, 그리고 일본을 가서도 계속됐다. 비록 대구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는 가지 못했지만 경주나 구미, 대구와 비교적 가까운 지역의 주말 경기는 꼭 챙겼다.
경기 때마다 어머니는 관중석에서 잠시도 가만히 앉아있지 못했다. 경기장 끝에서 끝까지 이민아가 뛰어다니는 곳마다 계속 쫓아가 그를 응원했다. 딸의 활약을 더 가까이서 지켜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어디 다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마음도 컸다. 딸의 부상에 조마조마하며 잠시도 가만히 앉아있지 못했다.
그렇기에 이민아가 일본에서 입은 부상은 어머니에겐 안타깝기만 할 따름이었다. 이민아는 재작년 겨울에 입은 햄스트링 부상으로 1년 동안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축구를 그만 둘 생각까지 하게 만든 전치 4~6개월의 심각한 부상이었다. 이제까지 큰 부상 없이 잘 뛰어 온 딸이었기에, 이번에 입은 큰 부상은 더욱 안쓰러울 수밖에 없었다.
#李玟娥[超话]##韩国队[超话]##韩国女足##仁川现代制铁#
오늘 점심에 5월에 생일인 사람들이 회의실에 모여서 케이크도 먹고 피자도 먹었어 이런 생일데이 활동이 신선하네~
오후도 바로 코스트 타고 업체 갔어 결산회의를 했지
코로나 이슈로 4개월만에 첫음으로 업체 사람들과 회의를 했어 그리고 오늘은 법인장님이 말씀하신 것 다 알아들어서 중간에는 한번도 끊지 않고 통역 잘했어 다행이다. 많이 걱정했는데 그나마 결국은 했내구나! 나는ㅋㅋㅋㅋㅋㅋㅋ
업체 사장님 및 분하고 우리팀장님도 “오늘 통역 멋있다고” “잘한다” “오늘 수고 많았다” “이번에 멍야오의 제일 완벽한 통역이래” 이렇게 아낌없이 칭찬을 했었는데 근데 내가 느낀 것은 실력이 있는 사람만 인정을 받을 수 있고 존경 받을 수 있다는 거야、、、 허 허허 허허허
어제조차도 이 일을 지긋지긋하다고 말했지만 오늘은 해 보니까 성취감도 느껴 지고 도전마인드도 자극했어 또 한편으로는 내가 하는 일이 항상 변화되고 잘하면 당연한 거고 못하면 욕먹어야 하는 거고 새로운 것도 많고 내 극한을 자구 초월하고 또 한 스텝 올아간 내가 자랑스럽다[耶]
오후도 바로 코스트 타고 업체 갔어 결산회의를 했지
코로나 이슈로 4개월만에 첫음으로 업체 사람들과 회의를 했어 그리고 오늘은 법인장님이 말씀하신 것 다 알아들어서 중간에는 한번도 끊지 않고 통역 잘했어 다행이다. 많이 걱정했는데 그나마 결국은 했내구나! 나는ㅋㅋㅋㅋㅋㅋㅋ
업체 사장님 및 분하고 우리팀장님도 “오늘 통역 멋있다고” “잘한다” “오늘 수고 많았다” “이번에 멍야오의 제일 완벽한 통역이래” 이렇게 아낌없이 칭찬을 했었는데 근데 내가 느낀 것은 실력이 있는 사람만 인정을 받을 수 있고 존경 받을 수 있다는 거야、、、 허 허허 허허허
어제조차도 이 일을 지긋지긋하다고 말했지만 오늘은 해 보니까 성취감도 느껴 지고 도전마인드도 자극했어 또 한편으로는 내가 하는 일이 항상 변화되고 잘하면 당연한 거고 못하면 욕먹어야 하는 거고 새로운 것도 많고 내 극한을 자구 초월하고 또 한 스텝 올아간 내가 자랑스럽다[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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