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韩语[超话]##韩语摘抄##韩语翻译[超话]#
독서 스크랩
韩语版《品三国》『삼국지 강의2』
저자: 이중톈(易中天) 역자: 김성배, 양휘웅
31강 빈틈을 타고 들어오다
第三十一章 趁虚而入
사실 방통과 제갈량은 함께 논할 인물이 절대 아닙니다. 방통의 공로는 오로지 하나입니다. 유비를 도와 익주를 얻게 한 것입니다. 『삼국지』「방통전」의 배송지 주에서 인용한 『구주춘추』와 『자치통감』의 기록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법정이 계책을 내놓자 유비는 망설이는 척했으나 방통이 다시 유비를 적극적으로 부추겨 행동으로 옮기게 한 것입니다. 방통은 이때 “형주 이 지방(정확히 말해 유비가 소유하고 있는 형주 4군)은 부유하지도 강대하지도 않습니다. 돈을 필요로 해도 돈이 없고 사람을 원해도 사람이 없습니다. 지금 동쪽에는 손권, 북쪽에는 조조가 있습니다. 세 세력이 정립하는 국면을 형성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지금의 익주는 ‘나라가 부유하고 백성들이 강합니다. 호구도 백만’입니다. 병마 역시 막강할 뿐 아니라 자급자족이 가능합니다. 충분히 이를 취해 큰일을 도모해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라고 유비를 부추겼습니다.
事实上庞统和诸葛亮也不可相提并论。庞统的功劳只有一件,就是帮刘备得到益州。据《三国志·庞统传》裴松裴松之注引《九州春秋》和《资治通鉴》,法正献策,刘备犹豫,庞统便极力鼓吹。庞统说,荆州这地方(准确地说指刘备所拥有的荆州四郡)既不富裕又不强大,要钱没钱要人没人,东边有孙吴北边有曹操,很难形成鼎足之势。益州“国富民强,户口百万”,兵强马壮而且自给自足,不妨借来成就大事。
유비가 촉을 손에 넣는 데에는 총 3년이란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동안 조조는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습니다(예컨대 견제하고 교란하는 일). 조조는 그보다는 쓸데없이 손권에게 무용을 뽐내고 위용을 과시하는 데에만 주력했습니다. 도요새와 조개가 싸우는 사이에 유비가 어부지리를 얻게 된 셈이죠. 하기야 이것 역시 일종의 빈틈을 타고 들어오는 전략으로 봐야겠지만 말입니다!
刘备取蜀,用了三年时间,曹操毫无动作(比如牵制骚扰一下),反倒向孙权耀武扬威。曹、孙鹬蚌相争,刘备渔翁得利,这也算一种乘虚而入吧!
유비가 익주를 얻은 다음 손권은 바로 상황이 좋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유비가 신의를 저버린 사람이라고 크게 욕을 하는 것 외에 사람까지 파견해 유비에게 형주 반환을 요구한 이유가 그래서였습니다. 그러면 유비는 손권에게 형주를 빌린 것이었나요? 도대체 어떻게 빌렸고 손권은 왜 그에게 빌려줬을까요? 또 이제 와서 돌려받을 수 있을까요? 돌려받지 못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刘备得到益州以后,孙权立即感到大事不好。除大骂刘备背信弃义外,还派人向刘备讨还荆州。那么,刘备是向孙权借了荆州吗?他是怎么借的,孙权为什么要给他,现在讨得回吗?如果讨不回,又会怎么样呢?
(以上内容是看着纸书录入的摘抄内容,也许偶有打错的别字)
독서 스크랩
韩语版《品三国》『삼국지 강의2』
저자: 이중톈(易中天) 역자: 김성배, 양휘웅
31강 빈틈을 타고 들어오다
第三十一章 趁虚而入
사실 방통과 제갈량은 함께 논할 인물이 절대 아닙니다. 방통의 공로는 오로지 하나입니다. 유비를 도와 익주를 얻게 한 것입니다. 『삼국지』「방통전」의 배송지 주에서 인용한 『구주춘추』와 『자치통감』의 기록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법정이 계책을 내놓자 유비는 망설이는 척했으나 방통이 다시 유비를 적극적으로 부추겨 행동으로 옮기게 한 것입니다. 방통은 이때 “형주 이 지방(정확히 말해 유비가 소유하고 있는 형주 4군)은 부유하지도 강대하지도 않습니다. 돈을 필요로 해도 돈이 없고 사람을 원해도 사람이 없습니다. 지금 동쪽에는 손권, 북쪽에는 조조가 있습니다. 세 세력이 정립하는 국면을 형성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지금의 익주는 ‘나라가 부유하고 백성들이 강합니다. 호구도 백만’입니다. 병마 역시 막강할 뿐 아니라 자급자족이 가능합니다. 충분히 이를 취해 큰일을 도모해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라고 유비를 부추겼습니다.
事实上庞统和诸葛亮也不可相提并论。庞统的功劳只有一件,就是帮刘备得到益州。据《三国志·庞统传》裴松裴松之注引《九州春秋》和《资治通鉴》,法正献策,刘备犹豫,庞统便极力鼓吹。庞统说,荆州这地方(准确地说指刘备所拥有的荆州四郡)既不富裕又不强大,要钱没钱要人没人,东边有孙吴北边有曹操,很难形成鼎足之势。益州“国富民强,户口百万”,兵强马壮而且自给自足,不妨借来成就大事。
유비가 촉을 손에 넣는 데에는 총 3년이란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동안 조조는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습니다(예컨대 견제하고 교란하는 일). 조조는 그보다는 쓸데없이 손권에게 무용을 뽐내고 위용을 과시하는 데에만 주력했습니다. 도요새와 조개가 싸우는 사이에 유비가 어부지리를 얻게 된 셈이죠. 하기야 이것 역시 일종의 빈틈을 타고 들어오는 전략으로 봐야겠지만 말입니다!
刘备取蜀,用了三年时间,曹操毫无动作(比如牵制骚扰一下),反倒向孙权耀武扬威。曹、孙鹬蚌相争,刘备渔翁得利,这也算一种乘虚而入吧!
유비가 익주를 얻은 다음 손권은 바로 상황이 좋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유비가 신의를 저버린 사람이라고 크게 욕을 하는 것 외에 사람까지 파견해 유비에게 형주 반환을 요구한 이유가 그래서였습니다. 그러면 유비는 손권에게 형주를 빌린 것이었나요? 도대체 어떻게 빌렸고 손권은 왜 그에게 빌려줬을까요? 또 이제 와서 돌려받을 수 있을까요? 돌려받지 못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刘备得到益州以后,孙权立即感到大事不好。除大骂刘备背信弃义外,还派人向刘备讨还荆州。那么,刘备是向孙权借了荆州吗?他是怎么借的,孙权为什么要给他,现在讨得回吗?如果讨不回,又会怎么样呢?
(以上内容是看着纸书录入的摘抄内容,也许偶有打错的别字)
#韩语[超话]##韩语翻译[超话]##韩语摘抄#
독서 스크랩
韩语版《品三国》『삼국지 강의2』
저자: 이중톈(易中天) 역자: 홍순도
中文版链接:https://t.cn/A6KVxHNa 韩语版链接:https://t.cn/A6K00zW1
25강 중도에 그만두다 & 26강 욕망은 끝이 없다
第二十五章 半途而废 & 第二十六章 得寸进尺
25강 중도에 그만두다第二十五章 半途而废
『삼국지』「오주전」의 배송지 주에서 인용한 『오력』에 의하면 당시 손권은 수차례나 조조의 군대를 향해 무력시위를 했습니다. 그러나 조조는 “수비만 하고 공격하러 나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손권은 이에 한술 더 뜹니다. 직접 가볍고 빠른 배 한 척을 타고(아마도 1개 선단으로 봐야 할 듯) 유수구에서 조조 군대의 초소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조조는 당연히 손권이 온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경비를 강화하고 활을 “함부로 쏘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조조가 보기에 손권의 선단은 “배의 무기와 군대가 잘 정돈돼”있었습니다. 이후 그들은 조조의 진영 앞에서 약 5~6리 정도를 더 돌며 시위를 했습니다. 돌아갈 때에는 심지어 한 바퀴를 더 돈 다음 조조의 군대를 향해 북을 치고 연주를 하면서 “스스로 사기를 북돋기도” 했습니다. 조조는 이 모든 것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그는 결국 “자식을 낳으려면 손중모(손권) 정도는 되어야지 유경승(유표)의 아들(유종)처럼 돼지 자식, 개 자식이 돼 사람구실을 못해서야!”라는 깊은 탄식을 토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据《三国志·吴主传》裴松之注引《吴历》,当时孙权屡屡向曹军挑战,曹操却“坚守不出”。于是孙权便亲自乘了一条轻船(估计应该有一个船队),从濡须口驶入曹军水寨前。曹操一看,就知道是孙权来了,是孙权要亲自来看看曹军的阵势(欲身见吾军部伍也),便下令各军严加戒备,箭弩“不得妄发”。孙权的船队“舟船器仗军伍整肃”,在曹营前走了五六里路,才返回。回去的时候还转了个圈,对着曹军击鼓奏乐,“鼓吹”了一番。所有这些,曹操都看在眼里,不由得喟然叹息说:“生子当如孙仲谋,刘景升儿子若豚犬耳!”
26강 욕망은 끝이 없다
第二十六章 得寸进尺
순욱은 조조가 정치 투쟁과 군사 투쟁을 결행한 결정적인 때마다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조조가 처음 군대를 일으켰을 때 동탁의 위세는 천하를 뒤덮었습니다. 조조는 자신감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순욱은 그런 그에게 용기를 북돋아줬습니다. “동탁에게는 절대로 좋은 결과가 없을 것입니다. 어떤 일도 이뤄내지 못합니다”라면서 조조에게 확신을 심어줬습니다. 이때가 초평 2년(서기 191년)이었습니다. 조조가 본격적으로 성장해나갈 때도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당시 제후들이 중원에 할거하고 있었습니다. 조조는 주저하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순욱은 즉시 잘못된 방향을 바로 잡아줬습니다. 그를 도와 전략적 계획까지 세웠습니다. 흥평 원년(서기 194년)의 일이었습니다. 조조가 천자를 맞으러 갈 때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모든 장군들의 입장이 분분하자 순욱은 그를 위해 정치적인 삼대 강령을 제정해줬습니다. 그는 ‘천자를 모시고 불복종하는 조정의 신하들을 호령’하도록 한 것입니다. 이는 건안 원년(서기 196년)때의 일이었습니다. 조조가 원소와 전쟁을 하려 했을 때, 즉 마음은 있으나 힘이 따르지 못한다는 사실을 통감했을 때에도 그의 역할은 빛났습니다. 조조에게 반드시 승리할 수밖에 없는 네 가지 원인을 분석하여 그의 투지를 촉발시켰습니다. 이는 건안 2년(서기 197년)의 일입니다. 건안 13년(서기 208년) 남쪽으로 유표를 토벌하려 간 조조를 위해 전략 방안을 수립한 이도 다름 아닌 순욱이었습니다.
实际上,在曹操进行政治斗争和军事斗争的每一个关键时刻,我们几乎总能看到荀彧的重要作用。初起兵时,董卓威陵天下,曹操信心不足,是荀彧告诉他董卓“必以乱终,无能为也”,事在初平二年(公元191年);发展时期,诸侯割据中原,曹操举棋不定,是荀彧指点迷津,帮他做出战略规划,事在兴平元年(公元194年);曹操欲迎天子,诸将众说纷纭,是荀彧为他制定政治上的三大纲领,支持他“奉天子以令不臣”,事在建安元年(公元196年);曹操欲战袁绍,痛感力不从心,是荀彧为他分析必能胜利的四大原因,激励了他的斗志,事在建安二年(公元197年)。甚至直到建安十三年(公元208年)南征刘表时,为曹操策划战略方案的,也还是荀彧。
(以上内容是看着纸书录入的摘抄内容,也许偶有打错的别字)
독서 스크랩
韩语版《品三国》『삼국지 강의2』
저자: 이중톈(易中天) 역자: 홍순도
中文版链接:https://t.cn/A6KVxHNa 韩语版链接:https://t.cn/A6K00zW1
25강 중도에 그만두다 & 26강 욕망은 끝이 없다
第二十五章 半途而废 & 第二十六章 得寸进尺
25강 중도에 그만두다第二十五章 半途而废
『삼국지』「오주전」의 배송지 주에서 인용한 『오력』에 의하면 당시 손권은 수차례나 조조의 군대를 향해 무력시위를 했습니다. 그러나 조조는 “수비만 하고 공격하러 나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손권은 이에 한술 더 뜹니다. 직접 가볍고 빠른 배 한 척을 타고(아마도 1개 선단으로 봐야 할 듯) 유수구에서 조조 군대의 초소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조조는 당연히 손권이 온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경비를 강화하고 활을 “함부로 쏘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조조가 보기에 손권의 선단은 “배의 무기와 군대가 잘 정돈돼”있었습니다. 이후 그들은 조조의 진영 앞에서 약 5~6리 정도를 더 돌며 시위를 했습니다. 돌아갈 때에는 심지어 한 바퀴를 더 돈 다음 조조의 군대를 향해 북을 치고 연주를 하면서 “스스로 사기를 북돋기도” 했습니다. 조조는 이 모든 것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그는 결국 “자식을 낳으려면 손중모(손권) 정도는 되어야지 유경승(유표)의 아들(유종)처럼 돼지 자식, 개 자식이 돼 사람구실을 못해서야!”라는 깊은 탄식을 토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据《三国志·吴主传》裴松之注引《吴历》,当时孙权屡屡向曹军挑战,曹操却“坚守不出”。于是孙权便亲自乘了一条轻船(估计应该有一个船队),从濡须口驶入曹军水寨前。曹操一看,就知道是孙权来了,是孙权要亲自来看看曹军的阵势(欲身见吾军部伍也),便下令各军严加戒备,箭弩“不得妄发”。孙权的船队“舟船器仗军伍整肃”,在曹营前走了五六里路,才返回。回去的时候还转了个圈,对着曹军击鼓奏乐,“鼓吹”了一番。所有这些,曹操都看在眼里,不由得喟然叹息说:“生子当如孙仲谋,刘景升儿子若豚犬耳!”
26강 욕망은 끝이 없다
第二十六章 得寸进尺
순욱은 조조가 정치 투쟁과 군사 투쟁을 결행한 결정적인 때마다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조조가 처음 군대를 일으켰을 때 동탁의 위세는 천하를 뒤덮었습니다. 조조는 자신감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순욱은 그런 그에게 용기를 북돋아줬습니다. “동탁에게는 절대로 좋은 결과가 없을 것입니다. 어떤 일도 이뤄내지 못합니다”라면서 조조에게 확신을 심어줬습니다. 이때가 초평 2년(서기 191년)이었습니다. 조조가 본격적으로 성장해나갈 때도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당시 제후들이 중원에 할거하고 있었습니다. 조조는 주저하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순욱은 즉시 잘못된 방향을 바로 잡아줬습니다. 그를 도와 전략적 계획까지 세웠습니다. 흥평 원년(서기 194년)의 일이었습니다. 조조가 천자를 맞으러 갈 때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모든 장군들의 입장이 분분하자 순욱은 그를 위해 정치적인 삼대 강령을 제정해줬습니다. 그는 ‘천자를 모시고 불복종하는 조정의 신하들을 호령’하도록 한 것입니다. 이는 건안 원년(서기 196년)때의 일이었습니다. 조조가 원소와 전쟁을 하려 했을 때, 즉 마음은 있으나 힘이 따르지 못한다는 사실을 통감했을 때에도 그의 역할은 빛났습니다. 조조에게 반드시 승리할 수밖에 없는 네 가지 원인을 분석하여 그의 투지를 촉발시켰습니다. 이는 건안 2년(서기 197년)의 일입니다. 건안 13년(서기 208년) 남쪽으로 유표를 토벌하려 간 조조를 위해 전략 방안을 수립한 이도 다름 아닌 순욱이었습니다.
实际上,在曹操进行政治斗争和军事斗争的每一个关键时刻,我们几乎总能看到荀彧的重要作用。初起兵时,董卓威陵天下,曹操信心不足,是荀彧告诉他董卓“必以乱终,无能为也”,事在初平二年(公元191年);发展时期,诸侯割据中原,曹操举棋不定,是荀彧指点迷津,帮他做出战略规划,事在兴平元年(公元194年);曹操欲迎天子,诸将众说纷纭,是荀彧为他制定政治上的三大纲领,支持他“奉天子以令不臣”,事在建安元年(公元196年);曹操欲战袁绍,痛感力不从心,是荀彧为他分析必能胜利的四大原因,激励了他的斗志,事在建安二年(公元197年)。甚至直到建安十三年(公元208年)南征刘表时,为曹操策划战略方案的,也还是荀彧。
(以上内容是看着纸书录入的摘抄内容,也许偶有打错的别字)
#韩语[超话]##韩语翻译[超话]##韩语摘抄#
독서 스크랩
韩语版《品三国》『삼국지 강의』
저자: 이중톈(易中天) 역자: 김성배, 양휘웅
中文版链接:https://t.cn/A6KVxHNa 韩语版链接:https://t.cn/A6KVxHNS
13강 매실로 담근 술 & 14강 하늘이 내린 기재
第十三章 青梅煮酒 & 第十四章 天生奇才
13강 매실로 담근 술
第十三章 青梅煮酒
그렇다면 유비는 영웅일까요? 그렇습니다. 먼저, 유비에게는 영웅의 의지가 있었습니다. 《삼국지》<진등전>에는, 유비가 형주에 있을 때에 일찍이 유표와 천하의 영웅을 논하다가 진등을 거론하게 된 이야기가 나옵니다. 허사라는 사람이 진원룡은 잘난 체하고 예의가 바르지 않다며 이렇게 말합니다.“제가 하비에 원룡을 보러 갔는데, 원룡은 반나절 동안 저와 말도 하지 않고 자기는 큰 침상으로 자러 가고 저에게는 작은 침상에서 자라고 했습니다.”그러자 유비는 “그대는 본래 국사라는 명성만 있지, 애석하게도 국사로서 갖추어야 할 내실은 갖추지 않은 것 같군요. 지금 천하가 크게 어지럽고 제왕들이 제 자리를 잃어 모든 사람들이 그대가 ‘국가를 걱정하고 집안일을 잊고 세상을 구원하려는 생각을 가지기를’ 바라는데, 그대는 뭐하고 있는 것이오? 전답과 가옥을 사려는 돈벌이에만 전념할 뿐, 채택할 만한 의견마저도 없으니 이것이 바로 원룡이 그대를 멸시한 이유인데, 그가 무엇 때문에 그대와 말을 하려 하겠소? 그대가 원룡을 만난 것만으로도, 그가 그대에게 친절을 베풀었다고 보아야 할 거요. 나라면 내가 백 척의 높은 집에서 잘지언정 그대는 땅바닥에서 자게 할 것이니, 큰 침상, 작은 침상은 입에도 못 담을 것이오!”
남송의 시인 신기질이 그의 사 <수룡음>에서 “전답과 가옥만을 사려고 안달하다가는 재능과 기백이 넘치는 유랑을 보기 부끄럽게 되겠지”라고 한 표현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那么,刘备是英雄吗?是。首先,刘备有英雄之志。《三国志·陈登传》说,刘备在荆州的时候,曾经和刘表一起讨论天下英雄,说到陈登。一个名叫许汜的人说,陈元龙(陈登字元龙)架子大,不讲礼貌。鄙人到下邳见元龙,元龙半天不和鄙人说话,然后自己去睡大床,让我睡小床。刘备说,足下素有国士之名,可惜并无国士之实。现在天下大乱,帝王失所,大家都希望足下“忧国忘家,有救世之意”。然而足下怎么样呢?“求田问舍,言无可采”,这正是元龙所不齿的,他为什么要和足下说话?这也就是碰上元龙了,还算客气。如果是小人我,恨不得自己睡在百尺高楼,让足下睡在地上,还说什么大床小床!这就是辛弃疾词“求田问舍,怕应羞见,刘郎才气”的出典。
14강 하늘이 내린 기재
第十四章 天生奇才
삼국시대의 역사에서 제갈량은 의심할 것도 없이 중요한 인물입니다. 그러나 건안 12년(207) 이전까지는 그의 모습을 전혀 볼 수 없고, 그의 목소리를 전혀 들을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순전히 그의 어린 나이 탓으로 돌릴 수는 없습니다. 그 시대에 소년 영웅들이 적었습니까? 더군다나 제갈량은 세상에 나왔을 때 이미 어른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세상으로 나올 생각이 없었다고 결론지을 수도 없습니다. ‘매양 자신을 관중과 악의에 비유’한 이 사람이 기꺼이 ‘난세에 그럭저럭 목숨을 부지하고 제후에 명성이 알려져 등용되기를 바라지 않을’ 리가 없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분명, 제갈량은 관망하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더 분명하게 말하자면, 시국을 관망하며 유비가 자신을 부르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렇다면 당시의 많은 영웅호걸 중에서, 제갈량은 왜 한눈에 유비를 마음에 들어한 것일까요? 털끝까지도 빈틈없이 살피는 눈을 가진 그가 유비에게서 무엇을 보았을까요?
诸葛亮在三国这段历史上,无疑是一个举足轻重的人物。然而在建安十二年(公元207年)以前,我们却一直看不到他的身影,听不见他的声音。这不能完全归结于他的年轻。那个时代,少年英雄还少吗?何况诸葛亮出山的时候,已经非常成熟。这当然也不能归结为他不想出山。要知道一个“每自比管仲、乐毅”的人,是不会甘心“苟全性命于乱世,不求闻达于诸侯”的。显然,诸葛亮是在观望和等待。说得再明白一点,就是在观望时局,等待刘备的召唤。那么,在当时众多的英雄豪杰当中,诸葛亮为什么就一眼看中了刘备呢?他那双明察秋毫的眼睛,在刘备身上又看见了什么呢?
(以上内容是看着纸书录入的摘抄内容,也许偶有打错的别字)
독서 스크랩
韩语版《品三国》『삼국지 강의』
저자: 이중톈(易中天) 역자: 김성배, 양휘웅
中文版链接:https://t.cn/A6KVxHNa 韩语版链接:https://t.cn/A6KVxHNS
13강 매실로 담근 술 & 14강 하늘이 내린 기재
第十三章 青梅煮酒 & 第十四章 天生奇才
13강 매실로 담근 술
第十三章 青梅煮酒
그렇다면 유비는 영웅일까요? 그렇습니다. 먼저, 유비에게는 영웅의 의지가 있었습니다. 《삼국지》<진등전>에는, 유비가 형주에 있을 때에 일찍이 유표와 천하의 영웅을 논하다가 진등을 거론하게 된 이야기가 나옵니다. 허사라는 사람이 진원룡은 잘난 체하고 예의가 바르지 않다며 이렇게 말합니다.“제가 하비에 원룡을 보러 갔는데, 원룡은 반나절 동안 저와 말도 하지 않고 자기는 큰 침상으로 자러 가고 저에게는 작은 침상에서 자라고 했습니다.”그러자 유비는 “그대는 본래 국사라는 명성만 있지, 애석하게도 국사로서 갖추어야 할 내실은 갖추지 않은 것 같군요. 지금 천하가 크게 어지럽고 제왕들이 제 자리를 잃어 모든 사람들이 그대가 ‘국가를 걱정하고 집안일을 잊고 세상을 구원하려는 생각을 가지기를’ 바라는데, 그대는 뭐하고 있는 것이오? 전답과 가옥을 사려는 돈벌이에만 전념할 뿐, 채택할 만한 의견마저도 없으니 이것이 바로 원룡이 그대를 멸시한 이유인데, 그가 무엇 때문에 그대와 말을 하려 하겠소? 그대가 원룡을 만난 것만으로도, 그가 그대에게 친절을 베풀었다고 보아야 할 거요. 나라면 내가 백 척의 높은 집에서 잘지언정 그대는 땅바닥에서 자게 할 것이니, 큰 침상, 작은 침상은 입에도 못 담을 것이오!”
남송의 시인 신기질이 그의 사 <수룡음>에서 “전답과 가옥만을 사려고 안달하다가는 재능과 기백이 넘치는 유랑을 보기 부끄럽게 되겠지”라고 한 표현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那么,刘备是英雄吗?是。首先,刘备有英雄之志。《三国志·陈登传》说,刘备在荆州的时候,曾经和刘表一起讨论天下英雄,说到陈登。一个名叫许汜的人说,陈元龙(陈登字元龙)架子大,不讲礼貌。鄙人到下邳见元龙,元龙半天不和鄙人说话,然后自己去睡大床,让我睡小床。刘备说,足下素有国士之名,可惜并无国士之实。现在天下大乱,帝王失所,大家都希望足下“忧国忘家,有救世之意”。然而足下怎么样呢?“求田问舍,言无可采”,这正是元龙所不齿的,他为什么要和足下说话?这也就是碰上元龙了,还算客气。如果是小人我,恨不得自己睡在百尺高楼,让足下睡在地上,还说什么大床小床!这就是辛弃疾词“求田问舍,怕应羞见,刘郎才气”的出典。
14강 하늘이 내린 기재
第十四章 天生奇才
삼국시대의 역사에서 제갈량은 의심할 것도 없이 중요한 인물입니다. 그러나 건안 12년(207) 이전까지는 그의 모습을 전혀 볼 수 없고, 그의 목소리를 전혀 들을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순전히 그의 어린 나이 탓으로 돌릴 수는 없습니다. 그 시대에 소년 영웅들이 적었습니까? 더군다나 제갈량은 세상에 나왔을 때 이미 어른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세상으로 나올 생각이 없었다고 결론지을 수도 없습니다. ‘매양 자신을 관중과 악의에 비유’한 이 사람이 기꺼이 ‘난세에 그럭저럭 목숨을 부지하고 제후에 명성이 알려져 등용되기를 바라지 않을’ 리가 없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분명, 제갈량은 관망하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더 분명하게 말하자면, 시국을 관망하며 유비가 자신을 부르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렇다면 당시의 많은 영웅호걸 중에서, 제갈량은 왜 한눈에 유비를 마음에 들어한 것일까요? 털끝까지도 빈틈없이 살피는 눈을 가진 그가 유비에게서 무엇을 보았을까요?
诸葛亮在三国这段历史上,无疑是一个举足轻重的人物。然而在建安十二年(公元207年)以前,我们却一直看不到他的身影,听不见他的声音。这不能完全归结于他的年轻。那个时代,少年英雄还少吗?何况诸葛亮出山的时候,已经非常成熟。这当然也不能归结为他不想出山。要知道一个“每自比管仲、乐毅”的人,是不会甘心“苟全性命于乱世,不求闻达于诸侯”的。显然,诸葛亮是在观望和等待。说得再明白一点,就是在观望时局,等待刘备的召唤。那么,在当时众多的英雄豪杰当中,诸葛亮为什么就一眼看中了刘备呢?他那双明察秋毫的眼睛,在刘备身上又看见了什么呢?
(以上内容是看着纸书录入的摘抄内容,也许偶有打错的别字)
✋热门推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