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편지
한동안 소식이 뜸했던 사람에게서 전자우편이 왔습니다. 남쪽에는 꽃이 만개했다는 편지입니다. 매화가 피었다고 알려 주고 싶어서, 복송아꽃 향기가 산등성이를 타고 달게 달게 번져 온다는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어서 편지를 쓴다고 했습니다. 꽃 핀 걸 바라보다가 누군가에게 꽃 소식을 전해 주고 싶어하는 마음이 그대로 아름답게 전해져 옵니다.
아랫녘보다 꽃이 늦게 피는 산골짝에는 오늘 무슨 꽃이 피었는지 나도 답장을 쓰기 위해서 마당으로 나가 뜰 여기저기를 거닐었습니다. 그래 생강나무꽃이 피었구나. 산수유꽃도 피었다고 전할까? 산벚나무는 곧 꽃망울을 터뜨릴 것 같다고 말해 주어야지. 자두나무도 꽃망울들이 모든 준비를 끝내 놓고 명령만 기다리는 자세로 고요히 앉아 있다고 말해 주어야지. 그런데 아직도 눈을 뜨지 않은 채 묵언정진하며 가부좌를 풀지 않고 있는 대추나무는 올 한 해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결론이 아직 안 내려졌는가 보다, 라고 써야지 그런 생각을 하며 뜨락을 거닐었습니다.
나는 글 쓰는 일을 하며 살아서 그런지 글로 표현하는 것은 익숙해도 말로는 표현을 잘 하지 않는 편입니다. 말이나 행동으로 표현을 잘 안 하고 담아 두고만 있어서 가까운 사람들에게 실망을 주는 때도 많고 오해를 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걸 알면서도 잘 고쳐지지 않습니다. 말이든 글이든 표현하는 습관을 갖는 건 좋은 일입니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못 보기 때문에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꽃이 피었는지 사람들이 왜 아우성을 치는지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가 관심 갖는 일 외에는 잘 안 보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보긴 보는데 보고 그냥 지나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꽃 핀 게 눈에 보이기는 하지만 거기서 끝입니다. 폭설에 나뭇가지가 부러졌구나 하고 바라보거나, 카드 빚 때문에 또 자살을 했구나 하고 기사를 읽다가 신문을 덮으면 그냥 거기서 끝입니다. 세상 일에 별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에 못 보는 것이고 안 보이는 것이지만 사실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골라서 보기 때문입니다.
보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조팝나무꽃이 핀 걸 바라보고 "올해도 봄이 왔구나"하고 생각합니다. 이 봄엔 내가 어떻게 아름답게 살아야 하는가 고민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생각은 표현하는 사람도 있고 표현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해마다 피는데 어쩌면 이렇게 늘 새롭지요. 사람들은 해가 바뀔 때마다 변하는데 말이에요." 그렇게 말은 던지거나, "머리 예쁘게 잘랐네요. 다섯 살은 젊어 보여요." 하고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누가 책상 위에 꽃을 가져다 놓았지?" 하고 생각하다 그냥 하던 일을 계속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아프거나 안색이 창백해져 있을 때 다가와 많이 아프지 않느냐고 물어봐 주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걸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이 결근을 해도 그냥 넘어가는 날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보고 느낀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밥 같이 먹고 꽃 구경하러 가자고 불러내거나, 인터넷신문을 읽다가 아이 손 잡고 거리로 나가 초에 불을 붙여 들고서 있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이 바뀌는 건 표현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어서입니다.
표현하지 않는 건 몰라서가 아니라 바빠서라고 합니다.실제로 바쁜 것도 사실이고 일이 많기도 합니다. 그러나 따뜻한 말 한 마디를 건네거나 관심을 표현하는 사람도 역시 바쁜 사람입니다. 바쁘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 짧은 시간을 낸 것입니다. 한가해서가 아니라 바쁘게 살고 있으면서도 나를 위해 마음을 써 주는 바로 그것이 고마운 것입니다. 표현하는 사람이 아름답다는 말도 있지만, 표현할 줄 안다는 것만으로도 삶은 윤택해집니다. 문자 메시지를 보내거나 촛불을 드는 일은 큰 일이 아닙니다. 작은 일입니다. 그러나 작은 배려, 작은 마음, 작은 표현, 작은 행동이 나를 바꾸고 상대방의 마음을 바꾸고 세상을 바꿉니다.
"목련이 꽃봉오리를 촛불처럼 밝히고 서 있네요. 그 밑에 상사화 잎이 쑥쑥 자라 오르고 있어요. 상사화 피거든 몇 송이 꺾어서 그대에게 가지고 갈게요."
편지 끝에 그렇게 써야겠습니다.
글/ 도종환 님(시인)
출처: <좋은 생각>2004월 5월 1일 발행
한동안 소식이 뜸했던 사람에게서 전자우편이 왔습니다. 남쪽에는 꽃이 만개했다는 편지입니다. 매화가 피었다고 알려 주고 싶어서, 복송아꽃 향기가 산등성이를 타고 달게 달게 번져 온다는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어서 편지를 쓴다고 했습니다. 꽃 핀 걸 바라보다가 누군가에게 꽃 소식을 전해 주고 싶어하는 마음이 그대로 아름답게 전해져 옵니다.
아랫녘보다 꽃이 늦게 피는 산골짝에는 오늘 무슨 꽃이 피었는지 나도 답장을 쓰기 위해서 마당으로 나가 뜰 여기저기를 거닐었습니다. 그래 생강나무꽃이 피었구나. 산수유꽃도 피었다고 전할까? 산벚나무는 곧 꽃망울을 터뜨릴 것 같다고 말해 주어야지. 자두나무도 꽃망울들이 모든 준비를 끝내 놓고 명령만 기다리는 자세로 고요히 앉아 있다고 말해 주어야지. 그런데 아직도 눈을 뜨지 않은 채 묵언정진하며 가부좌를 풀지 않고 있는 대추나무는 올 한 해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결론이 아직 안 내려졌는가 보다, 라고 써야지 그런 생각을 하며 뜨락을 거닐었습니다.
나는 글 쓰는 일을 하며 살아서 그런지 글로 표현하는 것은 익숙해도 말로는 표현을 잘 하지 않는 편입니다. 말이나 행동으로 표현을 잘 안 하고 담아 두고만 있어서 가까운 사람들에게 실망을 주는 때도 많고 오해를 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걸 알면서도 잘 고쳐지지 않습니다. 말이든 글이든 표현하는 습관을 갖는 건 좋은 일입니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못 보기 때문에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꽃이 피었는지 사람들이 왜 아우성을 치는지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가 관심 갖는 일 외에는 잘 안 보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보긴 보는데 보고 그냥 지나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꽃 핀 게 눈에 보이기는 하지만 거기서 끝입니다. 폭설에 나뭇가지가 부러졌구나 하고 바라보거나, 카드 빚 때문에 또 자살을 했구나 하고 기사를 읽다가 신문을 덮으면 그냥 거기서 끝입니다. 세상 일에 별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에 못 보는 것이고 안 보이는 것이지만 사실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골라서 보기 때문입니다.
보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조팝나무꽃이 핀 걸 바라보고 "올해도 봄이 왔구나"하고 생각합니다. 이 봄엔 내가 어떻게 아름답게 살아야 하는가 고민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생각은 표현하는 사람도 있고 표현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해마다 피는데 어쩌면 이렇게 늘 새롭지요. 사람들은 해가 바뀔 때마다 변하는데 말이에요." 그렇게 말은 던지거나, "머리 예쁘게 잘랐네요. 다섯 살은 젊어 보여요." 하고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누가 책상 위에 꽃을 가져다 놓았지?" 하고 생각하다 그냥 하던 일을 계속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아프거나 안색이 창백해져 있을 때 다가와 많이 아프지 않느냐고 물어봐 주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걸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이 결근을 해도 그냥 넘어가는 날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보고 느낀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밥 같이 먹고 꽃 구경하러 가자고 불러내거나, 인터넷신문을 읽다가 아이 손 잡고 거리로 나가 초에 불을 붙여 들고서 있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이 바뀌는 건 표현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어서입니다.
표현하지 않는 건 몰라서가 아니라 바빠서라고 합니다.실제로 바쁜 것도 사실이고 일이 많기도 합니다. 그러나 따뜻한 말 한 마디를 건네거나 관심을 표현하는 사람도 역시 바쁜 사람입니다. 바쁘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 짧은 시간을 낸 것입니다. 한가해서가 아니라 바쁘게 살고 있으면서도 나를 위해 마음을 써 주는 바로 그것이 고마운 것입니다. 표현하는 사람이 아름답다는 말도 있지만, 표현할 줄 안다는 것만으로도 삶은 윤택해집니다. 문자 메시지를 보내거나 촛불을 드는 일은 큰 일이 아닙니다. 작은 일입니다. 그러나 작은 배려, 작은 마음, 작은 표현, 작은 행동이 나를 바꾸고 상대방의 마음을 바꾸고 세상을 바꿉니다.
"목련이 꽃봉오리를 촛불처럼 밝히고 서 있네요. 그 밑에 상사화 잎이 쑥쑥 자라 오르고 있어요. 상사화 피거든 몇 송이 꺾어서 그대에게 가지고 갈게요."
편지 끝에 그렇게 써야겠습니다.
글/ 도종환 님(시인)
출처: <좋은 생각>2004월 5월 1일 발행
[뉴시스 인터뷰]
영화 '국가부도의 날' 헤로인
【서울=뉴시스】 신효령 기자 = "시나리오를 보고 나의 출연 여부와 관계없이 영화화됐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다."
배우 김혜수(48)는 28일 개봉하는 영화 '국가부도의 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왜 이 영화를 만들고자 했는지 그 부분을 끝까지 놓치지 않은 것 같다. '영화'라는 매개체를 통해 생각과 경험을 나눌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도 이 작품은 의미가 있다."
1997년 IMF 외환위기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다. 영화 '그날 밤의 축제'(2007), '스플릿'(2016)을 연출한 최국희(42)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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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수의 배역은 '한시현'이다. 국가 부도를 예견하고 대책팀에 투입된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이다. 국가 부도 상황을 국민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윗선의 반대에 번번이 부딪힌다.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 신념을 굽히지 않는다.
자신의 캐릭터에 대해 "조직 내에서 실력으로 승진한 여자"라고 소개했다. "협상장에서 IMF 총재와 맞서는 것이 전투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전사'이기보다는 자신의 본분을 끝까지 다하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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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현은 베테랑 연기자도 소화하기 어려운 역할이었다. 전문 용어가 워낙 많이 등장하고 대사의 양도 방대했기 때문이다. 배역을 위해 경제 강의까지 들었다. "외환위기 당시의 전반적인 경제 상황에 대한 공부가 필요했다. 한시현의 감정도 표현해야 했기 때문에 말에 대한 부담감이 없어야만 했다. 대사를 완벽히 소화하기 위해 약 5개월간 경제와 영어 강의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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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다. 김혜수는 강직함과 카리스마가 돋보이는 연기로 극을 이끌었다. '여배우 기근'이 고착화된 영화계에서 눈에 띄는 행보다. "작품마다 운명이 있는 것 같다. 정말 좋은 작품인데도 제작 과정이 순탄치 않아서 영화화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원래 하려던 배우 대신 다른 배우가 투입됐는데, 그 사람이 잘 해내는 경우도 있다. 어떻게 될지 가늠할 수가 없다. '국가부도의 날'은 내가 하게 될 운명의 작품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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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협상 당시 비공개로 운영한 대책팀이 있었다는 기사에서 영화는 출발했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대한민국에 들이닥친 경제 재난, 그 직전의 긴박했던 순간을 영화적 상상력으로 재구성했다. 국가부도 사태를 막기 위해 한시현을 비롯해 국가부도의 위기에 과감히 투자하는 '윤정학'(유아인), 무방비 상태로 직격타를 맞게 된 '갑수'(허준호) 등 당시를 대변하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1997년을 새롭게 환기시킨다.
김혜수는 "각자의 이야기로 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구조"라며 "가슴 아픈 이야기이지만 신파는 지양했다"고 강조했다. "한시현은 나라를 구해보겠다는 생각으로 고군분투한 게 아니다. 국가 위기의 정황들을 수집했고 보고서를 작성했는데, 계속 묵살됐다. 어느 순간 총장한테 보고서가 읽히면서 비상이 걸린 것이다. 상관에 대해 단순한 실망감을 넘은 경멸감 같은 게 있었을 것 같다. 그런 심정으로 연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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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호흡을 맞춘 유아인(32)·조우진(40)에 대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원래도 유아인이라는 배우를 좋아했는데, 이번에 더 좋아졌다. 성장하고자 하는 욕구가 엄청났다. 유아인처럼 확실한 아이덴티티를 가진 배우는 없다. 조우진 역시 굉장히 좋은 배우다. 테이크마다 연기가 미묘하게 다르다."
1986년 영화 '깜보'로 데뷔했다. 영화 '첫사랑'(1993·감독 이명세)로 제14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 본격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했다. 이후 드라마 '짝'(1994~1998) '사랑과 결혼'(1995) '사과꽃 향기'(1996) '복수혈전'(1997) '국희'(1999) '장희빈'(2002~2003) '즐거운 나의 집'(2010) '직장의 신'(2013) '시그널'(2016), 영화 '찜'(1998) 'YMCA 야구단'(2002) '얼굴없는 미녀'(2004) '타짜'(2006) '좋지 아니한가'(2007) '도둑들'(2012) '관상'(2013) '차이나타운'(2015) '굿바이 싱글'(2016) '미옥'(2017) 등 수많은 히트작과 화제작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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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대 나온 여자야"라는 명대사를 남긴 '타짜'로 제2의 전성기를 맞았으며, '도둑들'로 천만 배우 반열에 올랐다. 코믹 캐릭터부터 전문직 여성까지 다채로운 배역을 소화하면서 영화계에서 보기 드문 '원톱 여배우'로 자리매김했다.
김혜수는 "사실 배우를 하기에는 부적합한 사람"이라며 웃었다. "완벽주의자도 아니고 허술한 사람인데, 배우 일을 할 때만 예민한 편이다. 이 일은 그렇지 않으면 할 수가 없다. 사실 일할 때 매번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좌절한 적도 있고 실패감도 느꼈다. 다만 일할 때 불행하다고 느끼면 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배우로서 거창한 꿈은 없다. 매 작품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snow@newsis.com https://t.cn/R0bKNMM
영화 '국가부도의 날' 헤로인
【서울=뉴시스】 신효령 기자 = "시나리오를 보고 나의 출연 여부와 관계없이 영화화됐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다."
배우 김혜수(48)는 28일 개봉하는 영화 '국가부도의 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왜 이 영화를 만들고자 했는지 그 부분을 끝까지 놓치지 않은 것 같다. '영화'라는 매개체를 통해 생각과 경험을 나눌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도 이 작품은 의미가 있다."
1997년 IMF 외환위기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다. 영화 '그날 밤의 축제'(2007), '스플릿'(2016)을 연출한 최국희(42)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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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수의 배역은 '한시현'이다. 국가 부도를 예견하고 대책팀에 투입된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이다. 국가 부도 상황을 국민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윗선의 반대에 번번이 부딪힌다.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 신념을 굽히지 않는다.
자신의 캐릭터에 대해 "조직 내에서 실력으로 승진한 여자"라고 소개했다. "협상장에서 IMF 총재와 맞서는 것이 전투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전사'이기보다는 자신의 본분을 끝까지 다하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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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현은 베테랑 연기자도 소화하기 어려운 역할이었다. 전문 용어가 워낙 많이 등장하고 대사의 양도 방대했기 때문이다. 배역을 위해 경제 강의까지 들었다. "외환위기 당시의 전반적인 경제 상황에 대한 공부가 필요했다. 한시현의 감정도 표현해야 했기 때문에 말에 대한 부담감이 없어야만 했다. 대사를 완벽히 소화하기 위해 약 5개월간 경제와 영어 강의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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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다. 김혜수는 강직함과 카리스마가 돋보이는 연기로 극을 이끌었다. '여배우 기근'이 고착화된 영화계에서 눈에 띄는 행보다. "작품마다 운명이 있는 것 같다. 정말 좋은 작품인데도 제작 과정이 순탄치 않아서 영화화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원래 하려던 배우 대신 다른 배우가 투입됐는데, 그 사람이 잘 해내는 경우도 있다. 어떻게 될지 가늠할 수가 없다. '국가부도의 날'은 내가 하게 될 운명의 작품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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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협상 당시 비공개로 운영한 대책팀이 있었다는 기사에서 영화는 출발했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대한민국에 들이닥친 경제 재난, 그 직전의 긴박했던 순간을 영화적 상상력으로 재구성했다. 국가부도 사태를 막기 위해 한시현을 비롯해 국가부도의 위기에 과감히 투자하는 '윤정학'(유아인), 무방비 상태로 직격타를 맞게 된 '갑수'(허준호) 등 당시를 대변하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1997년을 새롭게 환기시킨다.
김혜수는 "각자의 이야기로 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구조"라며 "가슴 아픈 이야기이지만 신파는 지양했다"고 강조했다. "한시현은 나라를 구해보겠다는 생각으로 고군분투한 게 아니다. 국가 위기의 정황들을 수집했고 보고서를 작성했는데, 계속 묵살됐다. 어느 순간 총장한테 보고서가 읽히면서 비상이 걸린 것이다. 상관에 대해 단순한 실망감을 넘은 경멸감 같은 게 있었을 것 같다. 그런 심정으로 연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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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호흡을 맞춘 유아인(32)·조우진(40)에 대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원래도 유아인이라는 배우를 좋아했는데, 이번에 더 좋아졌다. 성장하고자 하는 욕구가 엄청났다. 유아인처럼 확실한 아이덴티티를 가진 배우는 없다. 조우진 역시 굉장히 좋은 배우다. 테이크마다 연기가 미묘하게 다르다."
1986년 영화 '깜보'로 데뷔했다. 영화 '첫사랑'(1993·감독 이명세)로 제14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 본격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했다. 이후 드라마 '짝'(1994~1998) '사랑과 결혼'(1995) '사과꽃 향기'(1996) '복수혈전'(1997) '국희'(1999) '장희빈'(2002~2003) '즐거운 나의 집'(2010) '직장의 신'(2013) '시그널'(2016), 영화 '찜'(1998) 'YMCA 야구단'(2002) '얼굴없는 미녀'(2004) '타짜'(2006) '좋지 아니한가'(2007) '도둑들'(2012) '관상'(2013) '차이나타운'(2015) '굿바이 싱글'(2016) '미옥'(2017) 등 수많은 히트작과 화제작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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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대 나온 여자야"라는 명대사를 남긴 '타짜'로 제2의 전성기를 맞았으며, '도둑들'로 천만 배우 반열에 올랐다. 코믹 캐릭터부터 전문직 여성까지 다채로운 배역을 소화하면서 영화계에서 보기 드문 '원톱 여배우'로 자리매김했다.
김혜수는 "사실 배우를 하기에는 부적합한 사람"이라며 웃었다. "완벽주의자도 아니고 허술한 사람인데, 배우 일을 할 때만 예민한 편이다. 이 일은 그렇지 않으면 할 수가 없다. 사실 일할 때 매번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좌절한 적도 있고 실패감도 느꼈다. 다만 일할 때 불행하다고 느끼면 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배우로서 거창한 꿈은 없다. 매 작품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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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호와 함께라면 어디든 갈 수 있어 데려다니기만 해주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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